박승원 '코리안 그루브: 유연한 몸부림' 리뷰 - 배은아(큐레이터), 2017

 

박승원의 작업에서 고독은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흉내내기와 따라 하기, 두드리기와 절룩거리기, 엇박자와 굉음, 죽 늘여서 찢어버리기, 잡아당기고 넘어지기, 소리지르고 도망가기, 슬로우 모션, 싸구려 번쩍임과 페이크 플라스틱, 야만을 잊고 사는 도시인들이 사이키델릭한 미러 밑에서 반복되는 핑퐁, 착, 팡, 칭, 텅텅텅, 조심스럽게 원스텝, 투스텝, 비틀거리고 마는 당신은 누구인가. 자신의 몸 속에 부글부글 끓고 있는 야만을 분출하지 못하는 당신은 때로는 컬러풀한 싸구려 장난감에 정열을 바치고 거울 속의 원숭이에 환희하며 흔들리는 중력에 몸을 맡긴다. 박승원의 작업 속에서 고독은 미련하고 우스꽝스러운 행태들의 변주들이다. 그러나 이 각양각색의 변주들은 한결같은 울림을 만든다. 그 것은 비로소 다가오는 해방감 혹은 비좁은 출구 같은 것이다. 아마도예술공간 옥상에서 처음 만난 박승원과 나는 이태원의 석양을 마주보고 꽤 긴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빵빠래를 불었고, 퍼포먼스에 대해, 예술에 대해, 삶에 대해. 떠들었다.

 

박승원의 작업을 살펴보면, 작가가 일관되게 고독한 존재를 주제로 다루는 반면 꽤 다양한 매체를 오고 가며 형식적인 실험을 동반해왔음을 알 수 있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박승원은 독일 유학 기간 동안에 동물원의 원숭이 흉내를 내며 자신의 고독을 군중 속에서 향유한다. 장시간의 원숭이 흉내내기 노동 때문에 파열된 무릎 연골은 자연스럽게 박승원 자신의 몸에서 타인의 몸으로 관심을 옮겨가게 한다. 그는 퍼포머를 고용하기도 하고 파트너와 함께 협업하거나 공연을 기획하면서 고독에서 소통으로 점차 관심사를 열어간다. 2016년 아마도예술공간에서 보여준 '유연한 몸부림'은 다섯 개의 분절된 공간에서 다섯 명의 퍼포머들의 고독의 움직임을 안무하는 작업이었다. 다섯 개의 독립된 몸부림은 무의미한 언어와 형이상학적 소리로 연결되어 증폭되면서 하나의 추상적인 공간을 만들어냈다. 2017년 갤러리구에서 전시한 '코리안 그루브'는 '유연한 몸부림'의 움직임을 녹화하고 편집한 26분 다채널 멀티미디어 인스톨래이션이다. 단정하게 놓인 책상과 그 뒤에 놓인 카메라 삼각대는 무지개 가발을 쓴 확성기를 지지하는 몸이 된다. 두뇌와 입이 합체된 기이한 형상의 머리는 핸드폰 액정화면으로 추상적인 문장들을 뱉어낸다. 핑크색 튜브 드레스를 입은 한 무더기의 플라스틱 덩어리들은 형광 줄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저 멀리 수중에 부유하는 기포의 발꿈치를 간질인다. 마네킹의 흉부를 가진 오색 바람개비는 하염없이 빙빙 돌고 쑥 드러난 엉덩이는 하늘로 수증기를 뿜어내고 있다. 구석자리에 무빙 라이트가 쭈그리고 앉아 뱅글거리고, 밀집 모자를 쓴 브라운관 모니터는 잡동사니 주방도구를 달구는 가짜 램프 위에 맨 다리를 드러내고 근엄하게 서있다. 건강한 카오스, 버라이어티 쇼, 하얗고 커다란 궤짝 속에서 전진을 외치고 있는 전사들이여!

 

'코리안 그루브'는 '유연한 몸부림'이라는 원 체험에서 독립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리안 그루브'를 단순히 퍼포먼스 다큐멘터리와 같은 2차 생산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박승원이 기어코 만들어내는 완전한 허구성 때문이다. 그 허구성은 과거의 시간성과 공간성이 만들어내는 논리적인 것들을 온몸으로 거부하고, 살아있는 몸과 사물들의 감각적인 관계들을 기계적 메커니즘으로 해체하는 작가의 시도에서 기인한다. 유쾌하지만 어딘가 기만적인 이 페이크 영상-오브제 캐릭터들은 박승원이 먼 길을 돌아 한국에서 드디어 끌어 앉는,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더 빠르고 더 반짝이고 더 위선적인, 벗어날 수 없는 너무나도 한국적인 코리안 그루브, 그 멜랑콜리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