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카오스를 꿈꾸는 자여! - 이추영(학예사), 2015
I. 공연소개
제1막. 원숭이 인간(시아람 1장/6분15초)
차가운 공기로 가득 한 어두운 새벽, 한 남자가 집을 나선다. 밤사이 굳은 몸을 쭉 펴고 팔, 다리를 빙글빙글 돌리며 꼼꼼히 스트레칭 한다. 스트레칭을 마친 남자는 갑자기 원숭이처럼 몸을 숙이고 두 팔로 땅을 짚은 채 맹렬히 걷기 시작한다. 직립보행으로 진화된 인간이 다시금 네 발로 헐떡대며 걷는 모습이 인적 드문 어두운 도로를 배경으로 기괴하게 다가온다.
동물원 원숭이 우리 앞의 남자가 두 팔을 축 늘어뜨린 채 건들거리며 원숭이의 몸동작을 진지하게 흉내 내고 있다. 원숭이의 유연한 동작을 따라하는 인간의 육체가 어딘지 부자연스럽다. 이 남자의 도발은 마침내 우리 속 한 원숭이의 관심을 끌었다. 이들은 일순간 종(種)의 차이를 초월하여 서로의 몸으로 교감하는 듯 보인다.
원숭이와의 성공적인 조우를 마친 남자는 다시 인적이 드문 어두운 길을 원숭이걸음으로 이동한다. 마침내 집 앞에 도착한 남자는 그제야 허리를 쭉 펴고 두 발로 땅을 디딘 채 일어선다. 남자는 굳어진 팔과 다리를 쭉 펴고 꼼꼼히 스트레칭을 한 후 문을 열고 집안으로 사라진다.
제2막. 사자 인간(멋지게 울부짖는 사자여!/10분 39초)
원숭이와 조우했던 그 남자는 이제 동물원 사자 우리 앞에서 한 팔을 든 채 낮은 소리로 으르렁대기고 있다. 점점 고조되는 남자의 외침은 사자의 울부짖음과 조금 닮은 듯도 하다. 10여 분간 계속된 소리 지르기는 남자의 연약한 성대는 한계 도달하고, 남자는 내장을 토해낼 듯 고통스럽게 컥컥거린다. 이런 황당한 광경을 처음 본 사자의 무심한 서신이 절규하는 남자와 극명하게 대조된다.
인터미션: 관객 참여(멜랑콜리아 오케스트라를 위한 즉흥곡/가변크기, 원스텝/5분 32초)
무대 위에는 초록색 플라스틱 소주 박스가 높게 쌓여져 있다. 각각의 박스에는 오렌지, 노랑, 초록 등 강렬한 형광색 나무 막대기가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꼽혀있다. 관객들은 자유롭게 막대기를 뽑아 자신의 가랑이에 깊숙이 끼운 다음 걸어 다니면 된다. 막대의 양 끝에 달린 작은 방울이 상큼하게 딸랑거린다. 곳곳에 설치된 CCTV가 관객들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중계한다. 관객은 「멜랑콜리아 오케스트라를 위한 즉흥곡」을 연주하는 퍼포머가 된다. 우울이라는 뜻의 ‘멜랑콜리아’는 기다란 나무막대를 가랑이에 끼고 방물소리를 울리며 종종걸ㅇ음 하는 관객들의 우스꽝스러운 퍼포먼스로 인해 전혀 멜랑콜리하지 않은 상황으로 변모한다.
무대 바닥에 놓인 밥상, 플라스틱 의자, 사다리, 코카콜라 박스 등의 일상의 물건들이 관객을 기다린다. 이들을 밟고 올라선 관객은 일순간 좌대 위의 주인공이 되고, 좌대 아래 장치된 조명이 화려한 불빛을 반짝인다. 좌대 위의 관객들은 마음껏 포즈를 취하며 너무 쉽게 정상(?)을 정복한 순간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다른 관객의 참여를 위해 장시간 점유를 자제해주십시오.)
3막. 투명 인간(호모 마지쿠스/25초, 호모 아르텍스/2분 45초)
무대의 우측 아래에 4단으로 쌓여진 붉은 벽돌이 위태하게 서있다. 화면 속 벽돌들은 위태롭게 흔들거리다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다. 무대의 좌측 벽면을 커다랗게 채우고 있는 인간형상의 그림자는 불안정한 벽돌 위에서 균형을 잡기위해 애쓰다 결국 쓰러져 버린 보이지 않는 존재를 암시한다.
어둠이 내린 마당의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 두 개의 금속 목발과 석고부목 보조 신발이 놓여있다. 목발과 신발로부터 연결된 실체 없는 그림자는 유인원처럼 두 팔과 다리로 땅을 딛고 서있다. 정지된듯했던 그림자는 천천히 팔 다리를 흔들고 기지개를 켜며 스트레칭을 한다. 하지만 이 그림자는 목발과 신발의 실체에 묶여 있는 불구로서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 한 젊은 예술가의 불안정한 현실인식이 일상의 위태한 삶에 구속된 우리들의 삶과 절묘하게 오버랩 된다.
4막. 동물 인간(건강한 카오스/17분 45초)
다수의 관객으로 둘러싸인 무대 위에서 한 남성이 메트로놈의 박자에 맞춰 서서히 움직인다. 새소리를 내는 남성의 등장과 함께 공간의 곳곳에 포진한 퍼포머들이 동물과 같이 유연한 동작으로 움직이며, 다양한 소음을 생산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 공간을 휘젓는 퍼포머들의 행동은 점점 고조되고, 격렬한 움직임과 괴성, 울부짖음이 전시장을 집어삼킨다. 진지하게 공연(?)을 관람하던 관객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곤혹스런 표정을 감추기 어려워진다. 격렬한 행위와 소음이 갑자기 멈춘 순간! 느닷없이 찾아든 절대 침묵! 전시장의 퍼포머와 관객들 사이엔 보이지 않는 기의 흐름이 팽팽하게 차오른다. 상호 어찌할 수 없는 끝없는 침묵의 대치! 메트로놈의 바늘이 똑딱, 똑딱, 똑딱 매몰차게 뛰어간다.
II. 작가소개
박승원(1980~)은 자신의 몸을 예술표현의 도구로 사용하는 ‘퍼포먼스(행위예술)’ 작가다. 현대미술에서 퍼포먼스는 전위적인 작가들이 전통적인 형식을 버리고 자신의 몸을 도구삼아 세상과 대면했던 격렬한 실험의 결과였다. 인간의 ‘몸’은 첨예한 이슈를 드러내기 위한 강력한 무기였고, 기존의 어떤 매체보다 효과적이고 즉각적이며, 복합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회화를 전공하던 학부 시절부터 비디오, 그래픽 영상과 퍼포먼스 작업을 시도했던 작가는 7년간의 독일 유학을 통해 본격적인 퍼포먼스 작품을 선보였다. 유학시절 이방인으로서 겪어야했던 소외감은 자신을 세상과 고립된 열등한 ‘원숭이’로 자학하던 시점까지 이르렀고, 교수의 조언으로 새롭게 깨닫게 된 ‘위대한 원숭이’의 존재에 대한 재인식은 새로운 작업의 돌파구가 되었다.
작가가 독일에서 선보였던 동물원 퍼포먼스는 인상적이다. 과할 정도로 무모해 보이는 퍼포먼스에서 작가는 자신의 육체를 한계상황까지 밀어붙인다. 화면 속 영상들은 호기심 어린 장난처럼 시작되어 점점 안쓰러운 감정과 함께 불편하고 불쾌한 감정까지 불러일으킨다. 혹시 작가는 자신의 육체를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행위에 원초적인 쾌감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어쨌든 작가는 동물원의 한 ‘원숭이(릴리)’와 섬세한 비언어적인 교감에 성공 한 이후 다른 동물들과의 소통으로 확장했지만, 사자, 코끼리 등과의 소통에는 결국 실패하였다. 이를 통해 박승원은 비언어적 소통의 가능성과 함께 타인(타종)과의 소통에 대한 근원적 한계를 깨닫게 되었다.
박승원의 동물원 퍼포먼스는 소외와 열등감으로 타인들과 고립되었던 한계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한 절박함과 팽팽한 긴장감, 그리고 진지함의 극단을 비집고 스며 나오는 아이러니와 유머가 복합적으로 뒤섞여있다. 작가는 동물원을 벗어나 원숭이 분장을 하고 도시에 뛰어들어 타인들과 조우하는 에피소드인 「시아람 2장」(2008)와 「수동풍금」 (2010 ~2011)을 발표한다. 도심의 지하철, 편의점 등에 등장한 원숭이는 사람들의 평온한 일상을 가볍게 도발하며, 비언어적인 몸의 반응을 이끌어낸다.
독일에서 귀국 후 선보인 「호모 마지쿠스」(2014)와 「호모 아르텍스」(2014)는 예술가의 삶과 현실에 대한 자전적인 고민을 담은 퍼포먼스 영상이다. 위태하게 서있던 벽돌이 흔들리며 무너지고(호모 마지쿠스), 두 개의 목발에 몸을 의지한 그림자(호모 아르텍스) 속 보이지 않는 실체는 불안정한 현실의 첨탑 위에서 구속의 몸으로 버텨야하는 젊은 예술가의 존재를 상징한다. ‘마술’과 ‘예술’이라는 허울 좋은 아름다운 단어는 화면 속 보이지 않는 실체의 비루함과 대조되며 페이소스를 자극한다.
박승원은 최근 집단 퍼포먼스인 「건강한 카오스」(2015)를 발표했다. 그는 ‘카오스’를 혼돈과 무질서의 상태가 아닌 상호 얽힘의 상태라고 말한다. 공연에 등장하는 퍼포머들은 메트로놈의 규칙적인 박자 속에서 이성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동물들의 움직임과 울부짖음을 연상케 하는 원초적인 에너지를 즉흥적으로 표출시킨다. 작가가 동물들과 시도했던 비언어적인 소통의 시도는 「건강한 카오스」를 통해 강력하게 증폭된 형태로 나타났다. 원숭이와 시도했던 비언어적 몸이 대화, 사자 우리 앞에서 외쳤던 울부짖음이 오롯이 인간을 겨냥한다. 관중들 사이에 위치한 퍼포머들이 알 수 없는 몸동작과 소음으로 긴장을 유발 시킨다. 점차 고조되는 격렬한 몸짓과 소음은 기에 눌려 굳어있는 관객들을 집어삼킨다. 사회화된 이성과 고삐 풀린 본능의 팽팽한 대치와 긴장감이 터질 듯 차오른다. 집단 광란과 광기처럼 복발하는 퍼포머들의 육체는 이성의 질서(카오스의 대척점)를 따르는(혹은 따른다고 착각하는) 관객들을 유린한다.
인간과 인간의 소통 역시 난해하다. 평행선과 같은 영원한 간극, 근원적 한계, 개별자의 존재가 공존하는 세계, 각각의 개체가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고 상반된 것들이 충돌하며, 끊임없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 이성의 질서와 규칙이 제거된 각자의 공간과 시간이 존재하는, 터질듯 한 에너지로 가득 찬 세계, 바로 ‘건강한 카오스’의 세계다. 박승원은 이성과 감성, 현실과 꿈이 기름과 물처럼 강력히 나뉘어 있는 현 세대의 공고한 수면을 끊임없이 휘저으며 ‘건강한 카오스’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박승원의 퍼포먼스와 공연들은 애잔하고 절절하며, 장난기가 가득하고, 유머러스하며, 시니컬하거나, 가끔은 엉뚱하고, 무신경한 듯 보였다가,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상황을 연출하는 등 관객들의 온갖 감정을 소환시킨다. 회화나 조각 등 전통적인 예술이 작가와 분리된 채 관객들의 반응을 일으키는 것과 달리, 퍼포먼스는 퍼포머와 관객들의 직접적인 관계 설정을 통해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박승원은 자신의 몸을 이용한 표현과 이에 반응하는 관객들과의 상호교류에 무한한 매력을 느끼는 듯 보인다. 온전히 예술가로서의 삶을 지속하기가 버거운 한국의 미술현장에서 ‘퍼포먼스’ 장르는 굉장히 고달프고 힘든 길이다. 여타 공연 예술과 달리 퍼포먼스는 전시를 위한 일회성 이벤트 정도로 인식되기 십상이며, 작품 판매 같은 건 언감생심이다. 예술의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예술계에서조차 ‘건강한 카오스’의 세상을 기대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의 건강한 건투를 빌며.